손상길님께서 2008.1.27(일) 밤 10시에 쓰신 글입니다 / 조회수:26110
벌써 재작년이었나? (연구노트를 보니 벌써 2006년 8월이었음)
울 교수가 새로운 일에 대해 주입식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동기유발을 위해서 교수가 할수 있는 최선의 길은
기회될때마다 그 일에 대해 언급하는것.
뭔가 거창하게 될꺼라는 비전을 심어주는데 인색해선 안된다.
그렇게 세뇌되길 한참.
졸업을 앞둔 연차높은 친구 한명과 나.
둘을 앉혀놓고 새로운 작업에 대해
몇번이고 같이 미팅을 갖고 토의하고 그랬었다.
새로운 주제는 comb laser.
2005년 Hänsch와 Hall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안겨다준 연구주제.
우리가 갖고 있는 계산방법으로
충분히 comb laser를 다룰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렇게 일은 시작되었다.
울 교수가 학생들을 잘 못믿는 스타일이라
우리 둘에게 똑같은 계산을 시켰었다.
각기 독립적으로 작업한 결과를 가지고
서로 완전히 똑같음을 확인해가면서 일을 진행해 나갔다.
그리하여 연차높은 친구가 정리를 해서 논문을 준비했고, 즉 써내려갔고
그 친구가 first, 난 second, 교수는 마지막.
논문 draft를 서로 확인해가며 차곡차곡 준비되고 있었다.
근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난걸까?
내가 교수곁에 없어서 그랬던걸까?
교수랑 그친구는 대만에 있었고, submit할때 내가 눈에 안보여서?
그런걸로 밖에 생각될수 없었다.
논문은 나도 모르는 사이 PRL에 submit되었고.
내 이름은 마지막 그 순간에 빠져있었다.
뒷통수 맞은게 바로 이런거겠지.
울 교수 스타일이 학생, 자기자신 달랑 둘만 올리는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긴 하다만
그래도 이건 경우가 아니었다.
도저히 참을수 없는 분노, 배신감.
더군다나 참기 힘든건, (내가 참여했다고 믿고싶은) submit된 그 논문 자체가 엉망인 수준.
나랑 한번 상의도 없이 결론이 뒤틀려있었는데
쉽게 말해 더하기 빼기를 잘못해서
엉뚱한 결론으로 맺고 말았던거다.
난 우리 교수(이쯤 되면 이제 괴수)가 논문을 낼때는
꽤나 꼼꼼하게, 사실 너무 지나치게 꼼꼼한게 아닌가 생각해왔는데
이건 왠걸. 논문제목에 벌써 오자가 있었고
그 오자는 논문 전체에 일관되게 틀리고 있었으니
할말 다 했다.
이런 쪽팔리는 논문에 내 이름이 안들어간게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수십번.
그래도 이건 아니라며 진정해가며, 교수한테 따져물었다.
내이름 왜 뺐냐고. / 네가 기여한게 뭐가 있냐고. /
내가 직접 쓴 부분은 없지만, 내가 이런이런 아이디어를 냈었고,
애시당초 공동작업 아니었냐고.
그리하야 다음 수정본이 올라갈때, referee 답변에 내가 많은 도움을 주게되면 (조건부허락?)
내 이름이 들어가는 걸로 담판을 지었다. (뭐, 그럼 지금까진 아니었다고?)
문제는 지금부터.
잘못된 결론부터 바로 잡아야했다.
이미 referee들의 검토를 한번 받았기에
결론은 뒤바꾸는데 조심스러워야했다.
여전히 교수와 난 거리상으로 떨어져있었기에
수정부분을 메일로 주고받기 수십수백번.
서로 의견 다른 둘사이 중재도 서야하고, 내 의견도 관철시켜야하고.
상관을 둘 모시는 기분이었는데
교수랑 한참을 싸워서 확답을 받아내고,
원저자인 그 친구를 다시 설득해서 논문에 수정이 되게끔 허락을 받아야했다.
두리뭉실 여기여기 좀 고치자, 이게 아니라
고칠 부분을 아예 단락을 새로 써서 보내줘도
이 친구 일처리가 답답해서 무시되기 일쑤.
이런 일련의 과정들로 진절머리가 날때쯤, 또하나 문제 발생.
이 친구가 쓴 한 단락 전체가 다른 논문을 그대로 베껴온것이다.
어이없음. 참 기도 안차서리.
내가 왜 이따위 논문에 이름 하나 넣고자
이 난리고생해가며 뭐하는 건가.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고심고심하다가, 뭐 별수있나.
때마침 논문분량을 줄여나가는 과정이어서
그단락 통째로 들어내고, 새로 써나갔다.
그 친구한테는 메일로 경고를 하고.
울교수한테는 그냥 분량 줄일려고 그런거라 묻어갔다.
하지만 이때부터 주도권은 나에게로 완전히 넘어왔고,
내가 논문 LaTeX 원본을 갖고 직접 고쳐나갔고
원저자한텐 허락이 아닌 통보를 하기에 이르렀다.
교수 입맛에 맞게
또한 원저자 입맛에도 맞게.
내 지친 입맛에도 맞게, 너무 지쳐 뭔 맛인지 모를 정도지만.
referee들의 온갖 요구사항 다 들어맞도록
바꾸고 바뀌고 뒤바뀌어져서
처음 submit되었던 논문은 온데간데 없고
이미 너절해질대로 너절해진 그로기 상태.
이제 그 논문이 세상빛을 보려고 한다.
submit된 시점이 지난 4월, 이제 일년이 지나 2월에 출판 예정.
단 PRL은 짤리고 PRA로... 아쉽게도 나름 강등.
유학온지 벌써 4년 반이 지났는데, 이제야 첫번째 논문이 하나 나가려고 하다니.
4개월에 한편써도 잘한다 소리 못들을텐데.
한시가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