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길님께서 2024.12.26(목) 낮 12시에 쓰신 글입니다 / 조회수:12274
제대휴가란걸 받은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방 옮기고, 정리하느라 바쁘다. 이사하는데는 이력이 났지만,
이사를 하고나서 새둥지의 분위기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여전히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방바닥도 이미 닦았고, 이사때 쓰인 박스를 눈에 안보이는 곳으로 다 치워놓긴 했지만
아직은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이 맞나 싶다.
아침에 눈을 떠보면 여전히 낯설다.
희정인 회사다니느라 힘들어한다.
거의 9개월만에 다니게된 회사.
정식 채용은 아니지만, 일 고된건 마찬가지지 싶다.
앞으로 밥벌어먹고 살 일이 막막한 나는
매일매일 희정이 회사 출퇴근 기사몫을 하고 있다.
3일에 한번씩 빼먹는 불성실한 기사가 아니라,
매일매일 데려다주는 성실근면 운전기사.
(근데 오늘은 하루 빠져야한다. 으쓱 ^_^)
매일 아침 운동을 하리라 맘먹었었는데
일주일 사이 고작 두번을 나선것 뿐이다.
이른 아침도 아니다. 8시가 다되어서야 달리기를 하다니.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8시면 세상은 활기차게 움직일 시간.
그때까지도 나는 뭉기적거리면서 눈꼽조차 못떼고 있다면 정말 한심한 일이다.
아침 기운을 맞으며 갑천변을 내달리며 하루를 시작해보자 다짐을 했는데
오늘 아침도 춥다는 핑계로 이불을 박차지 못했다.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
말년병장들의 고충은 하나같이 나가면 뭐하나였다.
왠지모를 불안감. 초조함. 남들은 앞서나갔을텐데, 자기만 뭐했나싶은 자책감.
나에겐 그런게 없을줄 알았는데, 왠걸, 경제적 문제가 심각하다.
당장 다음달부터 통장에 들어오는 수입이 없다는걸 깨달으니
앞으로 어떻게 메꾸어야할지 막막하다.
나도 무언가 해가면서 밥벌이를 해야할텐데.
일주일이 지났으되 뾰족한 수가 안떠오른다.
사병으로 제대할때도 말년휴가란게 있듯이
장교에게도 제대할 무렵이면 휴가를 내어준다.
군인에서 민간인 변환 과정을 거쳐야하는건 장교도 예외가 아니거든.
사병인 경우에는 정해진 휴가기간이 있으므로 왠만하면 꼭꼭 챙겨나갈수 있다.
근데, 장교의 경우에는 참으로 독특하다.
1년에 23일인가 정해진 휴가기간이 있긴 한데,
우리같이 1월 제대면 뭐냐, 한 이틀 나갈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실제 규정에 남아있는 달수의 곱하기 2인가 해서 휴가를 쓸수 있다고 되어있었다.
3년동안 복무했는데, 말년휴가가 너무 짧지않느냐 해서
대개의 경우엔 지휘관 재량에 따라 암묵적으로 한달간의 OFF를 주곤 했다.
그렇게 비공식적으로 해오다, 작년부터인가 규정상으로도 23일정도 말년휴가를 주도록
단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 23일 이내로 휴가를 쓸수있도록 고쳐졌다한다.
(참으로 군 내에선 지휘관의 재량이 결정적이다)
그렇다. 참 중요하다. 휴가를 보내고 말고는 상관의 마음먹기에 달려있기 때문에
나같은 소심한 성격으론 휴가보내달라고 당당하게 말하기가 참으로 껄끄러웠던거다.
그래서 알아서 해주려니 그냥 기다리는 판국이었는데
마냥 손놓고 있으니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았다.
더군다나 가장 중요한 후임자가 언제 오느냐하는 문제는
자칫하면 1월 말에나 인사명령이 떨어질 판이었다. 그 이유인 즉슨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서. 게다 결제를 한꺼번에 받기 위한 절차상 편의를 위해서
정해진 인사명령 문서가 대기중인걸 알게 되었다.
난 이런 문제 좀 빨리 해결해달라고 이곳저곳 전화하고 재촉하고... 이러는게 너무 싫었다.
제대휴가 빨리 받기 위해서 설치고 다닌다는 말이 너무나도 듣기 싫었던거다.
그래도 어쩔수 있나, 후임자에게 교육도 못시켜주고 나가야할 판인데.
전화를 걸었고, 시큰둥한 반응을 들었고, 나의 상관에게 가서 부탁을 드렸고,
아니나 다를까 휴가 빨리 나가려고 그러는구나 핀잔을 들었고,
전화를 다시 걸었더니, 미안하다며 당장 처리해주겠다며 180도 바뀐 대답을 들어야했다.
그렇게 해서 내정되어있던 내 후임자는 인사명령이 나기도 전에 이곳에 왔고
1주일간의 속성 교육을 마친 후에야, 난 비공식적인 OFF를 받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난 자유의 몸이 된듯 했으나
휴가를 받은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나에게 바뀐건 3일에 한번씩 어디론가 끌려갔다 나오는 체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
밤늦게 먼길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매일 학원에 나갈수 있다는 것.
매일 희정이를 데려다 줄수 있다는 것.
뭐 그러한데, 그다지 새로울게 없다는 점이 참으로 이상하다.
희정이가 그랬다. 1주일이 지난 지금.
예전보다 덜 신경질적이 되었다고... 나에겐 가장 큰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