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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 수덕사 여행기
모두 4개의 글이 있습니다. 토론기간: 2001.11.2 ~ 2002.11.1(약 12달동안)

손상길님께서 2001.11.2(금) 오후 5시에 쓰신 글입니다 / 조회수:28176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평일에 쉴수 있는 스케줄 근무라 시간적 여유도 생겼고, 발통이 달려서 공간적 제약도 줄었다. 맘만 먹으면 어디로든 나다닐수 있는 나. 내가 가보고 싶은 곳 중 첫번째로 꼽히는 곳이 바로 수덕사였다. 우리나라 현존 젤 오래된 목조건물인 수덕사 대웅전이 있다는 그곳.

차를 사고 얼마 안되서 수덕사 입구, 정확히 주차장 매표소 앞까지 갔던 적도 있었다. 아아, 난 수덕사 가는거 아니라고. 수덕사 입구까지 가서 뭐 있나 알아보려고 그런다고 암만 얘기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뭐가 뭐냐면... 좀 있다가) 마치 입장료처럼 걷어가는 주차비에 어이가 없어져가지고 그냥 뒤돌아 나온 경험도 있었다. 딱 거기까지만 했어야 했다. 약간의 동경과 희망을 묻은채 딱 거기까지.

신디. 몸매가 좋아서 SINDY인가? 본명은 신동윤(SIN D. Y.). 나랑 군대 같은 기수이고, 1년전 같은 부대에서 생활하다 얘기도 많이 나누고 정도 쌓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다. 얘가 좀 보기보단 부지런해서 변리사 시험을 얼마전에 치루고, 우리 한번 놀러다녀보자 빈말아닌 언약을 했건만. 기회가 좀처럼 닿지 않더니, 연 이틀간 나 놀고 그친구 놀고 딱 맞아떨어지게 된거다. 야, 가자... 그러마, 좋다... 했더랜거다. 그게 지난 10월 14일과 15일. 벌써 보름이 다 지났군. 신디랑 같은 군무면서 같이 어울리던 여형범, 배대현 친구와 같이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단연코, 수덕사. 서산과 대전의 대략 중간쯤 되기도 해서 서로 만나기도 좋겠다 싶었다. 점심때 만나 예산 혹은 삽교에서 나름대로 유명하다던 삽교곱창을 먹고, 곧장 차를 달려 수덕사로 직행. 처음 갔을땐 꽤 먼길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번 길에는 왜이리 금방이던지, 이렇게 가까운 곳을 두고 왜 몰랐나 싶더라.

자, 시작한다. 입장료아닌 입장료, 주차비 3000원을 뜯기는 걸로 넉넉한 고찰의 향내는 사라진다. 수덕사의 개발은 현재진행형. 안그래도 상점이니 요란한 밥집들이 많은데 뭘또 건물을 짓고 그러는지 자본의 행방은 알길이 없다. 우리를 맞이해준 수덕사의 초입은 공사판으로 시작되었다. 평일임에도 아저씨, 아줌마 위주의 관람객들이 상당하다. 그만큼 유명하고 규모도 있는 절인게다. 잘은 모르지만 불교계 내에서도 어느정도 위치를 차지한다 들었다. 온갖 식당과 상점들. 어느산이나 가도 있는 산채비빔밥과 관광기념수건. 수덕사 관광기념수건에 타이타닉은 왠말이요. 딱 규모작은 동학사 분위기 연상하면 되겠다. 호객행위는 어딜가나 마찬가지였는데 유독 이곳은 핸드폰줄이 인기인가보다. 모두가 입맞춘듯, 핸드폰줄 좀보고 가란다. 대한민국 어딜가나 있는 그걸 말이다. 우리또래 젊은 것들이 오면 그걸 권하라고 도청이나 군청에서 교육이라도 핸건지 원.

찝찝한 기분으로 일주문에 들어서자 예외없이 입장료를 받는다. (또!) 자그마치 일인당 2600원. 네명이니 만원이 좀 넘는다. 영화비가 6000원이 넘고 왠만한 전시회가 3~4천원 되는 요즘. 국보 48호 대웅전을 보러가는데 공짜로 볼수 있냐면서 흔쾌히 돈을 내랴? 삼성카드 있으면 영화표도 깎아주고 프로야구도 공짠데다 놀이동산도 무료입장인데, 문화재 관람은 왜 그런거 없냐고. 하고많은 제휴카드 많으면서 문화재관리청 같은 데랑은 제휴카드 안만들지? 울나라 문화재, 불교계 발전을 위해서 보시하는거다 생각해도 씁쓸함만은 지워지지 않는다. 만원이 넘는 돈액수에 씁쓸함은 배가 된다. 어쩔수가 없는거지. 이까지 왔는데 그냥 갈순 없잖어 하며 지갑을 열지만... 이젠 다신 안속을꺼다. 소문난 잔치 먹을것 없다고 입장료 받는 절은 이젠 안찾아 나설란다.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우려를 나타냈듯이, 수덕사 대웅전을 맞이하는 입구는 비까번쩍한 계단과 새로지은 널찍한 중국무술영화 세트로 꾸며져있다. 그까진 봐줄만 하다. 계단 끝까지 올라 수덕사의 하일라이트 대웅전을 바라볼라 하는데, 탁트인 시선에 초를 치는 어이없는 돌탑하나. 석탑이 아니라 돌탑이다. 시멘트분위기나는 돌탑. 끝봉오리는 금칠범벅으로 번쩍번쩍하여 눈맛버리는데 이 이상 갈께 없구나 싶더라.

대웅전이다. 고려시대 지은 현존 최고의 목조건물. 배흘림(엔타시스) 양식, 주심포계 맞배지붕의 대표적 건물. 책을 아무리 보고 공부해갔어도 내가 기억해낼수 있는 지식은 이게 다이다. 유홍준씨 말대로 대웅전 기둥에 서서 경치를 바라봐도 (비까번쩍 눈버린다) 대웅전 옆쪽 화단에 서서 뭔가 심오한듯 손가락 총모양으로 턱에 괴고 바라봐도 뭔가 뾰족한 감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 감정이 메말라서일까?' 금박 돌탑을 용케 피해가며 대웅전과 맞선다. 내가 받은 느낌은 노쇠한 할아버지의 모습, 그것이었다. 이마엔 쭈글쭈글 주름이 패였고, 머리도 눈썹도 하얗게 쇠어버렸다. 한때 난 아직 건재하오 당당히 섰겠으나 지금은 나이들어 어서 쉬고싶은 마음 간절하다. 너와는 말하기도 힘들구나. 미안하다. 이제 그만 날 내버려두렴.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빛바랜 자존심에 보채진 않았지만, 가늘게 배어나오는 신음소리에 힘겨움이 역력하다.

맞배지붕. 우리 전통 한옥 지붕 올리는 방법엔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팔작지붕이 있다는걸 알고는 나의 선호는 당연 맞배지붕 쪽이었고, 그 대표적인 건물로 수덕사 대웅전을 손꼽았던 것이다. 정말로 대웅전의 지붕은 11량이나 되어 엄청 크긴 크다. 정면에서 보면 위쪽 반이 지붕이라 아래쪽이 왜려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다. 다만 시선처리가 건물 밑에서 위를 우러러보게 되어있으므로 (명색이 대웅전인디) 지붕 크기의 균형은 적당해 보인다. 그 지붕을 지탱하기 위해 건물 가로폭이랑 세로폭이 거의 맞먹는데, 즉 건물형이 정사각형에 가까울 정도고 실제 가로 정면이 3칸, 세로 측면이 4칸 건물이다. 정면 한 칸이 엄청시리 넓긴 하지만 말이다. 건물 옆에서 보는 기둥과 들보의 면분할은 우리네 황금비율이라 극찬에 극찬을 아끼지 않는데, 기실 보는 맛이 좋다. 지붕이 11량이라 함은 기둥과 기둥을 가로로 잇는 도리가 걸쳐진 숫자로 옆에서 세어볼수 있었다. 보통 기초적인 구조가 3량, 5량정도 되는데 11개나 걸쳐있는거니 그 크기를 짐작할수 있겠다.

감상이 길어보이나? 천만에. 한 십분 채 걸리지 않았다. 절간을 다 둘러보아도. 절간 하나하나가 뭐하는지도 모르거니와 알려주지도 알 필요도 없기땜에 이십분정도도 안 지난듯 싶다. 우리네 상식으론 볼수있는게 한정되어 있는 탓이다. 어쨌든 낭패다. 이곳까지 오자고 한건 나인데, 뭐 어떻게 수습하란 말인가. 책에서 본 얘기며 설명을 곁들어봐도 원채 말주변이 없는데다, 내것아닌 얘기를 떠들어대니 금방 밑천이 드러났고. 실망스런 눈빛을 읽어내기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돌파구다. 우리 만공탑까지만 가보자. 만공이 말야 일제시대 때 창씨개명을 하지않은 유일한 본산 스님 궁시렁궁시렁... 젊은 여자 허벅지를 베고자지 않으면 잠이 들지 못했다고 궁시렁궁시렁... 그래 함 가보자. 한번 발을 들이면 헤어나기 힘든 법. 이로서 답사여행은 졸지에 산행길이 되어버렸다. 어둑어둑 금방이라도 비올것같은 다급감, 그림지도상 가까워보이는 허황된 희망, 이까지 왔는데 그냥 갈순 없잖어(이거 무섭다) 객기서린 무모함 등이 뒤섞여 우릴 정상까지 몰아세웠다. 중간중간에 향운각? 만공탑? 그야말로 썰랑하다.

별반 높지도 않은 - 그러나 대빵 힘든 - 정상에 올라서 비를 추적추적 맞고서야 그래도 뭔가 했다는, 어이없는 객기긴 했지만 그래도 한게 있다는 안도와 위안감을 찾게 된다. "하아, 하아, 내 미안하다. 내려가 동동주 한잔 사줄께."

이렇게 수덕사 답사... 아니지, 덕숭산 등정기를 일단락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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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길님께서 2001.11.6(화) 낮 1시에 쓰신 글입니다 / 조회수:12245

RE: 충남 예산 수덕사 수덕여관

우리의 잠자리는 정해져 있었다. 내가 지난번 헛걸음 한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난 수덕여관이란 데를 한번 보고잡은 거였다. 이름부터 수덕사의 수덕여관이다. 위치 또한 일주문 바로 옆에 있으니 절이랑 최대로 가까운 위치다.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울나라 최고 고찰 입구에 붙은 고택을 보러온건 물론 아니다.

올해초 수덕여관 주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했다. 주인 할머니는 고암 이응노의 원래 부인이다. 고암 이응노는 우리나라 화가 중에 내가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사람이 있구나라는걸 일깨워준 분이다. 내가 그토록 흠모하고 존경하므로, 그 사람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건 팬으로서 당연한 일일께다. 수덕여관은 고암과 원부인이 함께 여관을 치시던 곳이었고,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던 고암이 출소후 요양차 머물던 곳이기도 하다. 그당시 이곳에 머물면서 남겨둔 거대한 너럭바위에 새긴 암각화가 지금도 있으니, 난 그걸 보러 온 것이리라. 어쩌면 그것 때문에 수덕사에 그토록 오고팠던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간 묻혀왔던 고암의 이름은 꽤 알려져, 수덕여관 자체가 지방문화재 격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꼭 여관에 숙박을 하지 않더래도 고암의 암각화를 구경할수 있게끔 길을 열어둔 것이다.

수덕여관은 근래 보기드문 초가이다. 어어, 낭만있어 보인다고? 방을 열고 안을 보니 좀 암담하다. 아니지, 주인아주머니부터가 방을 한번 보여주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래도 쓰시겠어요? 하고 물어 봤을 정도니. 다행히 잠자는 곳은 초가가 아니지만, 네모반듯한 방 내부가 아니라 모서리가 패이고 뭉뚱그려진 정육면체 내부를 상상하면 되겠다. 네명이 발뻗고 누우면 딱 맞아 뒤척여선 안되는 싸이즈이고, 그나마 TV가 있어 친구들에겐 덜 미안했다. 한 사람당 6000원씩의 백반을 시켜놓고, 약속했던 동동주 한,두,세 사발을 시켜먹고 (방값을 내가 내는걸로 무마했다. 이만원) 초가지붕 아래에 그래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타니...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면 그야말로 딱인 분위기가 될듯 한데... 너도나도 한잔 먹세 하며 서로를 얘기하니, 우리만을 위한 술상이요 우리만의 공간인지라, 온세상을 다 가진듯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사실, 돈 꽤 들었다.)

시골은 시골이라 그렇게 진탕 마셔대며 한참을 놀았는데도 9시, 10시가 채 못되는 시간이었다. 근데도 세상은 온천지 암흑뿐이다. 어둠이 그렇게 무르익었을 때였나. 나에겐 오늘이 소원 성취하는 날일테다. 내 어찌 그냥 갈쏘냐. 여관앞 공터로 홀연히 나선다. 아까 말한 암각화에는 '고암가족'이란 이름의 울타리로 둘러쳐져있다. 하나는 큰 돌덩어리, 또하나는 좀 작은. 펑퍼짐하게 자리잡은 형태가 둘다 야외에서 밥상놓고 노는 너럭바위 임에 틀림없다. 그 둘레로 고암만의 기묘한 문자추상이 음각으로 양각으로 파여있는거다. 이렇게 아름다운 걸. '고암가족' 울타리가 나랑 고암 사이를 벌려놓고 있는거다. 고암가족이란게 누굴 말하는건지 알만도 해서, 고암과 고인이 된 할머니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셈도 된다. 내 가만있을수 없어 그 위를 올라본다. 벌써 수도없이 누군가 올랐을 그곳이라 이미 한쪽 옆면은 많이 닳아져있긴 하다. 그래도 이건 그냥 보고만 있는 작품이 아닌, 보고 만지고 쓰는 물건인게다. 깜깜한 야밤 중에 돌덩어리 위에 쪼그리고 앉아 돌을 쓰다듬는다. 반대편 쪽에도 새겨져 있을까? 돌이끼같은 촉촉함만이 느껴진다. 한치앞도 보이지않을 어둠속, 돌을 쓰다듬고 그 홈을 따라 손끝으로 쓸어보자 비로소 내가 여기 온것 같았다.

짧지만 짜릿했던 고암과의 만남.
선생님, 제가 여기 왔다 갑니다.

뎅뎅뎅... 수덕사는 절임에 틀림없다. 잠을 뒤척이진 않았으나 새벽 종소리에 잠시 정신이 든 모양이다. 10시가 다 되어서야 잠에서 깬 우리들. 새벽산사를 거닐어보는 운치는 아직 미숙한 우리에겐 사치인가보다. 지금 수덕여관의 주인은 할머니랑 어떤 관계일까. 또 고암이랑은 어떤 사이일까. 떠나는 길에 한번 물어볼까 했으나 관뒀다. 뭔가 미진한 구석을 남겨두고싶어 그랬는갑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유홍준씨 책에는 분명 수덕여관 뒤뜰에 암각화가 있다했고, 거기서 술도 한잔씩 했다고 적고 있다. 울타리를 치면서 장소를 보기좋은 공터로 옮겼음에 틀림없을진데 -- 수덕여관 바깥으로 말이다. 확인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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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길님께서 2002.11.1(금) 오후 5시에 쓰신 글입니다 / 조회수:11580

RE: 충남 예산 수덕사엘 간다고!

1년전에 쓴 글인데, 아직도 마무리가 안되었다.
사실은 수덕사 갔다온 다음에, 옛부대 근처인 대산일대와
소박한 아름다움의 개심사란 절 이야기가 더 있는데,
노트에만 적어놓고 아직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난민"과 "과감히 지울껴" 두 친구녀석들이 수덕사에 놀러간단 얘기를 듣고
배가 아파 옛글을 끌어올려 되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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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ugee님께서 2002.11.1(금) 저녁 8시에 쓰신 글입니다 / 조회수:11531

RE: 충남 예산 수덕사엘 간다고!

엉. 간다.

근데, 안 갈지도 모른다. 원래 우리가 그렇잖아. :)

p.s 슬슬 차를 몰고 어디로 가는것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져서 그런지도. 물론 시내만 벗어나도,
갔다오면 피곤해서 앓아 눕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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