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미리 열쇠를 받아서 짐을 좀 옮겼다.
참고로 우리집은 이사에 이력이 난 집안인데
이사할때 우선순위 1호는 다름아닌 베란다 밀림을 방불케하는 화분들이다.
음... 나는 우선순위를 뭘로둘까 고민을 하다가
역시나 다름아닌 구닥다리맥으로 정했다. (겐맨 고마워)
모니터, 본체, 스캐너, 외장하드, 타블렛, 잡다리한 케이블들...
그것만 해도 한짐이 되었다. 집안가득 화분만큼이나 소중히 다루어야 할것들이다.
(실제 그러하다. 하도 오래된 물건들이라 이동후엔 몇번씩 부팅이 안되기도 했다)
네모난 방한칸, 귀퉁이를 잘라 조그만 화장실 공간하나.
먼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지, 겉보기엔 깨끗해보여도, 문지르면 까만게 묻어나온다.
벽 한면이 유리로 되어있다. 바깥엔 좁다랗지만 다용도실같이 타일붙인 공간이 나오고.
그바깥엔 창문이 나있다. 역시나 먼지가 깨좨재하지만 탁트인 유리창이 맘에 든다.
기본적으로 갖추어진 세간들, 책상하나, 의자하나, 거울대하나, 장농하나.
모두들 싸구려 합판으로 만들어져 나무결 테잎을 붙인 허술한 물품들.
닦은데 또 닦으며 이것들을 어떻게 배치할껀가 고민해본다.
나에게도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집이란건, 내방이란건, 자기라는 존재를 비로소 확인케한다.
3년전, 정확히는 3년하고도 몇달 전.
가입교기간이라고, 본격적으로 훈련받기 전에 신체검사하고 대기하던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서먹하던 그시절.
임시로 방을 배정받고 4명이서 같은 방을 쓰게되었다.
처음있는 청소시간.
나에게 배정받은 관물함을 닦다가 어느 한 친구에게 얘기를 듣는다.
- 넌 왜 옆면은 안닦니?
- 왜? 옆면엔 먼지가 안쌓이잖어.
- 그래도 옆까지 닦아야지.
그랬다. 서로간에 통성명을 하고 어느정도 배경을 파악하고 있었는지라
그는 나를 손에 물한방울 안묻히고 살아온 이로 생각하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청소하난 잘해왔다고 생각해온 나였다. 나도 남들하는만큼은 해왔지 않은가.
내가 남에게 그런 느낌를 받아야한다는게 무척이나 못마땅했던거다.
있는힘껏 걸레질을 했다. 옆면이고 윗면이고 박박 문질렀다.
과연, 묵혀있던 먼지가 까맣게 묻어나왔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 일이 있은후, 3년간의 군생활에 있어서
제공부만 하는 고상한척 잘난 놈으로 남들에게 비춰지지 않기위해 노력해왔다.
다른 이들은 나에게 학벌이란 껍데기를 씌워 나를 바라보았지만
부던히도 그런 선입견을 깨기위해 노력했다.
난 평범한 일개 장교였다. 더 나은것도 더 못한것도 없는 무난한 장교.
그랬던거다. 이젠 난 걸레질을 하면서
안쪽 옆면까지 구석구석 잘 닦는다.
새롭게 시작하는 방에서, 새롭게 갖게된 옷장을 닦으면서
문득 옛상념에 젖어든다. 그게 벌써 3년전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