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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전화번호

손상길님께서 2003.1.23(목) 오후 4시에 쓰신 글입니다 / 조회수:8855 처음엔 별게 아니었다. 내가 지금 무척 바쁘니깐 7시 10명 OO식당에 예약 좀 해놓으라고 하시길래, 좀 허탈했지만, 누구 분부신데 하며 별 감정없이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렸다. 아뿔싸, 근데 전화번호부에 없다. 아! 이런 없네 곤란을 토로하자 주위 사람들이 나서서 도와준다. 그곳 생긴지 얼마 안되어서 없을꺼라고. 그러면서 그집 공사땜에 잠시 문닫았다고 귀띰해준다. 그랬군. 역시 별 생각없이 말씀드린다. 이러해서 예약을 못했다고. 큰일날뻔 했군 하시며 그럼 그 옆집 XX식당으로 예약하란다. 이런 아뿔싸, 그것도 전화번호부에 없는거였다. 114에 물어봐도 안나온다 하더이다. 아까 도움을 줬던 주위 사람중 한분이 퇴근하면서 가는 길에 예약해주겠단다. 아 그거 잘됐군. 그래 그럼 예약할때 전화좀 주라고 전하라고 말씀하신다. 전화가 왔다. 지금 그 집 앞인데, 반대로 되었다고. 옆집 XX식당이 문닫고 OO식당이 문열었다고. 아이구 이런, 직접 말씀드리라고. 알았어요 그려죠. 이렇게 모든 일은 끝날꺼였다. XX갔다가 옆집 OO 문열은것 봤으면 큰일날뻔 했다고. 그게 뭐 큰일이냐고 히히덕거리면서... 큰일은 나고 말았다. 따르릉~ 인터폰 호출소리. 이 엉터리같은 놈, 대체 뭐하길래 전화번호도 못챙기고 헛소리한거야. 그게 사실은 이러이러해서. 이자식 올라와. 여기서 잠깐, 별것도 아닌 일 잘못했다 그러고 마느냐 아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느냐 판단도 잠시, 나는 약간 부아가 치밀었다. 너 이자식 말이 왜그렇게 많아. 어디서 말대꾸야. 쪼그만게 누구한테 대들어. 상황이 이쯤되면 철퍼덕 고꾸라져야하는데, 내 또 그럴순 없지. 할말이 있었기에 말씀드린거라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오해가 생긴거라고. 좀더 차분히 해명을 했어야 했는데, 난 이미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상태였다. 논리상 정황상 내가 굴복할 이유는 없는데 숨막히는 위계질서는 이유따위는 용납하지 않는다. 요근방 지가 잘가는 집 전화번호는 죄다 정리해놓으란다. 내가 그딴걸 왜 해? 상가로가 있노라고 맞섰지만, 어차피 또한번 의미없는 일을 해야할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다시금 자리에 앉아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 아까의 분노는 다 어디갔을까. 이상하게도 별일아닌것처럼 별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일이 있었느니 날 다시보겠지. 고분고분 말잘듣는 손중위였는데 말이야. 이걸 꼬투리로 또 얼마나 많은 딴지를 걸어댔까. 언제 함 봐라 딱 벼르고 있겠지. 상하가 분명한 사회에서는 나중에 받을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암말않고 눈딱감는게 상책이다. 그저 굽신대며 굴복하며 뒤탈없는 삶을 누렸을 나를 생각해보며 씁쓸히 웃음만 지어본다. 대체 내가 왜 그랬느냐고? 딴게 아니라 지 밥먹을 식당 전화번호 땜에 생긴 일이다. 내가 뭘더 참아야 했는가. - - - 사실 돌이켜보면 식당예약좀 해놓으라고 얘기했을때 거절을 해야하는 문제다. 내 직책은 본인의 비서가 아니거든. 자신보다 아랫 계급은 모두 자기 아랫사람으로, 자기 수족처럼 부릴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착각이다. 하긴,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 이사할때 아랫것 사병들 부려서 이사짐 다 싸곤 하지. 작전상황유지장교라고 직함을 갖고 있으면서 저녁시간때 야간때 받는 전화의 일부는 누구누구 핸드폰번호, 무슨 식당 전화번호, 무슨 술집 전화번호 좀 알려달라는게 흔하디 흔하다. 무엇보다도 근무를 맥빠지게 하는건 바로 이런 전화들, 이런 부탁들, 이런 강요들인게다. 이런 고충을 들어줘야할 상관이, 자신을 위한 근처 먹을만한집 전화번호목록을 만들어놓으라고 지시하니, 어디 하소연할땐 없고 그저 예예할 뿐이다. 이 글의 링크 및 트랙백: http://www.zannavi.com/blog/1/1180 트랙백을 위 링크로 보내면 이곳에 댓글로 남게됩니다.

▼ 근무장 | 손상길 ▲ 담배 | 손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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